서울여자대학교는 3·1운동 직후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여성 고등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한 대한예수교장로회가 1923년 12차 총회에서 대학설립을 결의하였으나 식민통치의 억압된 상황에서 그 설립이 좌절되었다.
해방 이후 1958년 7월에 재단법인 정의학원이 인가됨에 따라 1960년 12월 서울여자대학이 설립인가를 받게 되어 마침내 1961년 4월에 개교하게 되었다. 민족의 수난기를 거쳐, 설립결의를 한 후 38년이 경과되어서야 개교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19세기 말 이후 기독교는 당시 국운을 염려했던 진취적인 개화파 지식인, 청년 그리고 신여성들에게 널리 전파되었다. 특히 3·1운동에는 많은 기독교 남녀기독교인들이 하나가 되어 참여하였고 이는 여성들의 사회의식 각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서울여자대학교의 설립은 바로 이러한 기독교와 여성과의 관계 속에서 싹텄으며 교회복음 운동의 확산과 더불어 궁극적인 사회발전과 국민의식과 생활수준 향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여성 고등교육을 전담하는 대학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장로회 총회에서 설립이 결의되었던 1923년부터 개교한 1961년에 이르는 38년 간은 실로 험난하였던 우리민족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시기였다. 일제 식민지하에서의 고통과 해방 이후의 혼란, 6·25의 참상으로 정치적·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민족적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이를 위한 여성 고등교육 기관의 설립이 절실한 과제로 제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대학을 설립하게 된 당시의 직접적인 시대적·사회적 요구는 특히 본 대학 초대학장 고황경 박사의 기독교적 교육철학과 지도자적 개척정신에 의해 본 대학 교육이념의 근간이 되고 실천적 생활교육의 모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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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한 시대적 요구
현대사회는 여성이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 직접 참여하여 사회 발전에 기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교육은 여성에게 개인의 인격도야와 가정에서의 역할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발전에 참여하고 선도하기 위한 지도자로서의 훈련도 함께 시행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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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 혼란과 이에 대한 대처의 필요성
한 국가의 흥망은 그 국민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치관이 전도되고 개인의 출세와
성공만을 위한 이기주의와 물질주의가 전환기의 사회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대학교육을 통하여 올바른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갖춘 청년들을 배출할 필요가 있었으며, 특히 가정과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그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기독교정신이 구현될 수 있는 여성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이 필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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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실천과 봉사의 필요성
대학에서 학문적 연구는 또한 실천과 응용 그리고 사회적 봉사로 이어질 때 그 결실이 더욱 커진다. 따라서 대학에서도 실천인과 봉사 인으로서의 능력을 배양하는 사회적 실습과 훈련과정을 개설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업사회에서 공동목표를 향해 협동할 수 있는 사회적 인격을 갖춘 인재양성이 대학교육의 중요한 목표가 된 것이다.
본 대학이 다른 대학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생활교육 체제를 갖추고 개교이래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사회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교육적 사명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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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발전에 기여할 필요성
설립 당시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약 70%에 해당하는 농촌인구를 고려한다면 농촌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한국국민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였다. 급격한 산업사회로의 전환은 공업과 상업발달을 촉진시켰으나 상대적으로 농촌을 황폐화 시켰다. 이에 문화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국민생활의 근본이 되는 농촌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고. 아울러 농민의 자각과 의욕을 고취시켜 줄 지도자를 배출하는 일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본 대학 설립초기에 ‘농촌과학과’를 설치하여 학문적 실천을 도모한 것과 4학년 전 학생들에게 방학 중에 1주일 이상 농촌 실습을 의무적으로 매년 시행하여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게 한 것 등은 바로 농촌 사회발전이 곧 국가발전의 요체 라는 기본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본 대학의 이념과 설립자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